큐티는 간절함이다

큐티에는 당위성이 생겨야 합니다.

QT(큐티)의 사전적 정의가 있습니다.
큐티는 "매일 아침에 시간과 장소를 정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..." 뭐 이런 정의가 있죠.
큐티를 이렇게 정의하면 "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?" 라는 질문이 저절로 생깁니다.
그래서 QT 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공부하게 되고 그 방법대로 해 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.
큐티에 대한 세미나도 다녀보고, 모임에도 나가보고, 매일 빠지지 않고 열심히도 해 봅니다.
그런데 이상하게 잘 안됩니다.

그럴 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좌절감입니다.
강사가 말할 때는 다 될 것 같은데 막상 내가 하면 생각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.
남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그렇게 안될까요?
강사가 말할 때는 너무 쉽고 집에 가서 꼭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왜 안될까요?

저는 큐티에 대한 정의부터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.
사전적 정의 보다 개인적 정의가 더 필요합니다.
큐티에 대한 정의의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고 필요성의 문제를 말하고 싶습니다.

남이 말하는 큐티보다 내가 느끼고 내 안에서 정의된 큐티가 있어야 합니다.
나에게 있어 큐티는 어떤 의미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죠.
왜냐하면 이것은 나에게 큐티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.
큐티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냐에 따라 내가 큐티를 할 수 있는 당위성이 생기고, 당위성이 생겨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.

 

여러분에게 큐티는 어떤 의미로 다가 옵니까?
만약 교회에서 하라고 해서 시작한다면 그것은 숙제가 될 것입니다.
누군가가 신앙생활의 필수라고, 큐티하면 너무 좋다라고, 그러니 꼭 해보라고... 그런 말을 듣고 시작했다면 그것은 의무가 될 것입니다.
큐티를 이미 하고 있는 분들 중에 매일해야 된다는 강박 속에 빼먹지 않으려고 억지로라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숙제 + 의무가 될 것입니다.

큐티를 매일 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만약 큐티를 하루 빼먹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?
'회개' 아니면 '포기' 둘 중에 하나입니다.
매일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비는 사람이 되거나, 아예 큐티는 나랑 안맞는다며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.

 

만약 필자인 저에게 큐티가 어떤 의미냐 물으신다면, 저는 큐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.
왜 만나야하는 것이냐고 한다면,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.
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건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죠.
그 분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건 주야로 그 분의 말씀을 묵상(시편 1편)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.

사랑한다 말하면서 만나지 않는건 거짓말하는 것입니다.

제가 큐티를 매일 하냐고요? 아뇨. 매일 하나님을 만난다면 좋겠지만,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.
제가 큐티를 잘하냐고요? 아뇨. 전 큐티를 목말라합니다.
목마르기에 매일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합니다.
목마르기에 하루를 빼 먹으면 아타까움이 생깁니다.
그래서 더 말씀이 보고 싶어 집니다.

큐티를 잘 하고 싶어서 큐티에 대한 노하우를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.
그러나 큐티를 잘하려는 생각을 버리시고, 큐티에 목말라 해 보세요.
그러면 큐티가 간절해지고 큐티를 통해 목마름을 해결 받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.
내가 왜 큐티해야 되는지에 대한 내 안의 해답을 목마름 속에서 얻을 수 있으니까요.

이런 목마름을 해결 받는 경험이 나를 살리고 큐티를 꾸준하게 하는 밑거름이 됩니다.

 

큐티가 어렵고 꾸준하게 하기 힘들다는 것은 내 안에 목마름이 없다는 것과 동일합니다.
정말 내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사시는지 점검해 보세요.
그렇다면 나는 큐티하지 말라고 해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.
왜냐고요? 내 안에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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